왕샤오밍 강연 동영상 중 1989 천안문 운동 관련 부분 번역


왕샤오밍(王曉明) 선생의 강연 동영상 중 89 천안문 관련 부분을 살펴보고 번역했다.

전체 강연 동영상 링크 주소 http://www.tudou.com/home/_725668476/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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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운동은 아주 복잡하여 많은 모순이 뒤섞여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6.4 운동을 이해하는가는 80년대의 복잡한 현실을 파악하는 열쇠입니다. 어떻게 얘기하건 간에 6.4 운동은 80년대 전체를 아우르는 개혁의 내재적 모순이 격화된 결과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 정권과 공산당 정권의 연이은 몰락도 역시 또 하나의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6.4 운동은 두 가지 큰 결과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동유럽 모델과 미국 모델로부터 나온 민주적 요구가 억압됐다는 것입니다. 

대중과 지식인들은 보편적으로 환멸감을 느끼게 되었으며 공공생활에 대한 냉담한 감정이 형성되어 개인의 물질적 생활의 개선에만 관심을 두게 되었고, 동시에 민중들은 정부의 정책결정을 개선하려는 요구들을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80년대 개혁에서 아주 중요한 하나의 지점은 바로 민중과 인민들이 보편적으로 정부에게 이것저것을 하라고 아주 강력하게 요구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6.4 이후에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이러한 요구들을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많은 그리고 아주 극심한 정부의 정책이 6.4 이후부터 하나씩 추진되었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결과입니다.


두 번째 결과는 통치계급의 심각한 반성입니다. 

심각한 반성의 결과는 바로 현실주의, 그리고 현실의 공리주의의 측면으로 돌아가 민주와 사회주의를 포기하게 된 것입니다. 사회주의는 실제 포기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르바쵸프의 개혁도 부정되었고 서방식의 민주도 부정되었습니다. 당내 개혁파도 철저히 사라졌습니다. 왜냐하면 원래 당내 개혁파들이 설득력이 있었던 이유는 우리가 민주로 사회주의를 구해낼 수 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6.4 운동과 소련 및 동유럽 공산당 정권의 붕괴를 통해 통치계층이 분명히 이해할 수 있었던 것 하나는 개혁이 사회주의를 구해낼 수 없었다는 것이고 민주는 사회주의를 구해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회주의를, 그리고 사회주의 정권을 당으로 이해한다면 민주를 한다는 것은 자기가 자기의 권좌를 해체하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통치계급의 반성은 현실주의로 돌아가는 것으로, 즉 정권을 공고히 하는 것이 유일하고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현실주의의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 이후에 새로운 개혁의 명확한 목표가 형성되었는데 바로 정치안정과 정권안정의 전제 하에 경제를 발전시키고 세계와 통합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90년대의 개혁입니다. 이 시기에 개혁의 방향이 결정되었습니다. 레닌 모델은 최종적으로 리콴유 모델이 되었습니다. 리콴유 모델을 포기한 후에 우리는 어디로 가야합니까? 80년대는 여러 가능성들이 모두 존재했습니다. 6.4 운동을 거치고, 소련과 동유럽의 해체를 거치고 이러한 일련의 일들을 거친 후에 내부에서 새로운 컨센서스가 형성되었습니다. 개혁의 방향의 기본은 리콴유 모델로 '경제발전, 하지만 정권안정'입니다. 소위 이 정치안정, 그리고 안정유지는 저우용캉 개인의 발명이 아닙니다. 이것은 전체적인 하나의 컨센서스이고 하나의 원칙입니다. 이렇게 1980년대의 개혁은 궁지에 몰렸습니다. 1980년대의 개혁과는 확연히 다른 개혁의 길이 관료 계층의 보편적인 지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80년대 개혁이 시작되었을 때 관료 계층은 아주 반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90년대에 새롭게 개혁이 제기되자 이것은 새로운 개혁이었기 때문에 관료계층은 보편적으로 지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현재 모두가 80년대와 90년대의 개혁을 흐리멍텅하게도 하나의 연속적인 과정으로 보고 있는데 이러한 설명방법은 사실 완전히 틀린 것입니다. 이 둘은 두 개의 완전히 다른 개혁으로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체한 것입니다. 저는 이 다름을 확실히 인식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by 허난시 | 2015/07/07 11:18 | 중국연구실 | 트랙백 | 덧글(1)

[프레시안 북스] 김기협 선생님의 <중국, 자본주의를 바꾸다> 서평

중국 성공 이끈 '국가의 힘', 그 근원은 '사회주의+유교'?

[프레시안 books] 자본주의 이후 <2> 훙호펑 엮음 <중국, 자본주의를 바꾸다>

김기협 역사학자 2015.03.13 16:5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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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의 글을 묶은 책은 그 자체가 '소개'의 의미를 가진 것이기 때문에 그 책을 다시 소개한다는 것은 그리 내키지 않는 일이다. 책에 소개된 여러 관점을 짧은 글에 두루 담으면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명료하게 내놓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책 <중국, 자본주의를 바꾸다>(훙호펑 엮음, 하남석 외 옮김, 미지북스 펴냄)는 꼭 짚어보고 싶다. 2009년(번역본은 2012년)에 나온 책이니까 2008년 금융위기 전에 기획되어 위기 후에 정리된 책이다. 앞서 소개한 마틴 자크의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도 2009년에 나온 책인데, 금융위기를 현실로 인식하면서 세계체제론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인 책이다. 반면 이 책에는 세계체제론에 대해 다양한 입장이 포함되어 있고 금융위기를 아직 인식하지 않은 글이 많다. 중국의 진로와 세계정세의 변화에 대한 금융위기 시점 학계의 전망을 폭넓게 살펴보기에 합당한 책이다. ('world-system'을 '세계체제'로 옮기기도 하고 '세계체계'로 옮기기도 하는데 이론적 정확성으로는 '체계'가 옳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맥락에서는 '체제'가 더 효과적 표현이다. 내 글에서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세계체제'로 옮긴다.)

각 장의 제목에 간단한 내용 설명을 붙인다. 

(1) 서론 - 지구적 자본주의의 세 전환과 중국의 부상(훙호펑) : 미국 중심으로 구축되어 있는 기존의 세계적 자본주의 체제는 20세기 후반에 전환의 과정을 겪어왔다. 이 과정에서 미국 헤게모니의 쇠퇴와 함께 동아시아의 역할 증대가 중요한 변화였다. 20세기 말 중국의 부상은 동아시아 역할 증대의 연장선 위에서 출발했으나 21세기로 넘어온 후 다른 차원의 의미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의미를 폭넓게 파악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2) 장기적인 관점으로 본 중국의 시장경제(조반니 아리기) : 유럽이 산업혁명으로 노동절약적-자본집약적 시장 발전의 길로 나설 때 중국은 노동집약적-자본절약적 노선을 지킴으로써 엇갈리게 되었다. 유럽의 선택은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중엽까지 유리한 조건을 누렸으나 1970년대 이후 조건이 바뀌기 시작해 중국의 선택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지금 세계정세의 변화는 중국 발전 경로의 장기적 우위가 확인되는 과정이다. 

(3) 중국의 경제 기적과 그 궤적(앨빈 소) : 고립상태에서 모택동주의를 지키고 있던 30년 동안 중국은 이후 발전의 튼튼한 기초를 닦았다. 이 시기에 확립된 당-국가는 빠른 변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체제의 기반이 되었고, 그 덕분에 중국은 다른 개발도상국들과 달리 신자유주의 시장 개혁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었다. 당-국가가 뒷받침한 민족 해방 이데올로기도 자본 동원 등 해외의 우호적 네트워크 형성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했다. 

(4) 대중화권의 거대 하청업체(리처드 애플봄) : 지금의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서는 유통업자가 제조업자에게 '갑질'을 하고 있다. 대규모 소매업체들이 영세한 하청업자들을 무자비한 경쟁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을 중심으로 거대 초국적 하청업체가 형성되면서 힘의 균형을 바꾸고 있다. 이 하청업체의 조직이 새로운 세계체제의 주축이 될 수 있다. 

(5) 중국의 부상과 지구적 부의 재분배(요제프 뵈뢰치) : 세계적 힘의 균형에 큰 변화가 생길 때 많은 갈등이 일어나기 마련이고 파국에 이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20세기 초 독일의 부상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 그런 상황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동유럽 공산권의 희생 덕분인데, 이제 그 희생도 한계에 이르러 앞으로 지정학적 갈등의 격화가 예상된다. 미국-유럽-일본에서 '중국의 위협'에 예민한 반응이 나오는 것이 그 조짐이다.

(6) 중국 경제의 상승과 일본의 원자재 주변부(폴 시캔텔) : 역사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볼 때 중국의 발전이 천연자원 공급 면에서 새로운 지정학적 경쟁을 일으키기 시작하고 있으며 일본과의 사이에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과거에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자원 주변부를 순조롭게 넘겨받던 상황에 비해 중국의 자원 주변부 확보는 일본과 이해관계의 첨예한 충돌을 일으키는 것이다. 

(7) 중국과 러시아의 지경학적 통합(존 굴릭) : 소련 시절의 위세를 잃어버린 후 다극적 세계질서를 추구해 온 러시아는 중국의 성장에 협조적인 입장이다. 따라서 군사기술과 우주기술 등 중국에게 요긴한 여러 분야의 기술이전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온 것이다. 석유 등 주요 자원에 대해서도 미국의 영향권을 거치지 않는 공급이 가능하기 때문에 두 나라의 협력관계가 유지될 것이며, 반(半)주변부 권력 블록의 기반이 될 것이다.

(8) 중국과 미국의 노동 운동(스테파니 루스 & 에드나 보나시치) : 20세기 말 중심부 국가들의 노동운동 쇠퇴 현상이 중국의 산업 발전에 따라 역전될 가능성이 있다. 급격히 커지고 있는 중국의 노동자 집단이 행동주의로 나서기 시작하고 있는데, 이 운동이 자라나 해외 노동자 집단과 연대를 맺게 된다면 자본에 대한 노동의 협상력이 세계적으로 크게 늘어날 것이다. 

(9) 세계 노동 소요의 진원지로 떠오르는 중국(비벌리 실버 & 장루) : 중국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는 노동 소요의 양상은 중국이 노동 소요의 세계적 중심지가 될 전망을 떠올려주고 있다. 폴라니식과 마르크스식 노동 소요가 분명히 나타나고 있는데, 생활양식과 사회적 결속에 대한 위협에 저항하는 폴라니식은 중국 북부 지역에서,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주동적 행동주의 성격을 가진 마르크스식은 남부의 신흥 산업도시에서 활발하다.

(10) 경고 - 중국의 부상은 지속 가능한가?(훙호펑) : 엮은이는 이 질문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려 애쓰지만, 속마음은 긍정으로 기울어진 느낌이다. 마지막 문단을 옮겨놓는다.

단기적, 중기적으로 볼 때 과잉 측적 경향과 환경 위기로 인해 중국에서 경기 둔화나 불황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지구적 자본주의의 무게 중심이 일반적으로 아시아, 특히 중국으로 이동하는 것은 계속될 것이며, 21세기의 새로운 국제 질서가 만들어질 것이다. 이러한 가능성의 실현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는 결국 중국이 자신의 발전 모델을 더 평등하고 더 조화로우며 덜 환경 파괴적인 모델로 전환시킬 수 있는지 여부이다. 

간단히 넘어가는 제6∼제9장 

관심이 적게 가는 주제에 대한 의견부터 간단히 적어놓은 다음 내 흥미를 많이 끄는 주제에 관한 이야기를 마음 놓고 길게 하겠다. 제8장과 제9장에서 노동운동 이야기가 나오는데, 재미있는 시각들이 보이기는 하지만 내게는 크게 중요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노동과 자본 사이의 관계는 마르크스 이래 세상이 움직이는 제1원리처럼 중시되어 왔는데, 어떤 상황에서나 그 중요성이 똑같이 클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자본에 대항한다는 의미에서 노동운동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이기 때문에 자본주의 아닌 다른 체제를 상정함에 있어서는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떨어지게 될 것으로 나는 예상한다. 

제6장에서는 중국과 일본의 관계, 제7장에서는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설명되어 있는데, 당장 상황의 진행을 잘 보여주는 주제다. 중국의 성장에 대한 일본의 경계심을 미-일 군사동맹 차원에서 해석하거나 중국에 대한 러시아의 우호적 태도를 미국과 나토에 대한 반발 차원에서 설명하는 것을 넘어 '자원 획득'의 시각으로 내다봄으로써 훨씬 더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관점을 제공한다. 

중국의 발전에 따라 '자원'의 실제적 의미가 겪을 변화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세계적 산업화가 덜 진척된 상황에서는 자원 획득의 경쟁이 그리 심하지 않았다. 따라서 자원 가격도 낮은 수준에서 형성되었다. 20세기를 통해 산업 확대에 따라 경쟁이 심화되었지만 군사력에 의한 저유가(低油價) 체제가 유지된 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1970년대 이후 극한적 저유가 체제는 버티지 못하게 되었지만, 지금까지도 미국은 가능한 한 낮은 수준에 유가를 묶어놓기 위해 애쓰고 있다. 

유럽과 일본 등 지금까지 석유를 비롯한 산업자원의 주요 수입국은 미국의 영향권 안에 있는 나라들이었다. 그런데 그 밖에 있는 거대한 수입국이 새로 나타남으로써 자원 저가 체제가 버티기 어렵게 되고 있는데,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지속을 어렵게 만드는 조건이 될 것이다. 이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책을 차후에 소개하겠다.

중국의 성장은 지정학적 구조 변화를 불러온다 

제5장에는 세계경제의 지정학적 구조 변화와 그 속에서 중국의 역할이 설명되어 있다. 10여 년의 기간(1989∼2001) 동안 구 공산권의 변화에 대한 설명이 인상적이다. 구 공산권은 (1) 사회주의를 포기한 동유럽 및 구 소련 국가들, (2) 고립 상태를 지킨 북한과 쿠바, (3) 사회주의를 지키며 개방에 나선 중국과 베트남, 세 개의 그룹으로 나뉜다. (2)그룹은 특수한 조건 아래 있으니 비교의 의미가 없고, (1)과 (3)그룹의 성패가 극명하게 대조된다. 중국과 베트남은 소득수준의 향상은 크지 않아도 전체 국력에서 큰 발전을 보았는데, 동유럽 국가들은 거의 예외 없이 국력도 쇠퇴하면서 소득수준도 폭락했다. 

이 설명은 내가 혼자 마음속으로 생각해온 (1990년경의) 냉전 종식의 의미와 부합한다. 1980년대의 신자유주의가 자본주의 체제의 원만한 지속이 어렵게 된 상황에서 극약 처방처럼 나온(소수 행위자의 상대적 우위를 지키기 위해 파국을 오히려 재촉한다는 의미에서) 반동노선이며 소위 냉전 종식도 자원 약탈의 범위를 넓히려는 신자유주의 노선의 필요에서 빚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왔다. 동유럽 국가들의 몰락은 이 관점에 맞는 현상이다. 이 방향의 설명을 내놓은 연구나 논설이 있는지 더 찾아봐야겠다.

1980년대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은 그리 크지 않은 나라들이었기 때문에 그 성장이 세계경제의 지정학적 구조 변화를 급격하게 일으키지 않았다. 반면 중국 같은 거대한 경제권의 급격한 성장은 구조 변화를 크게 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그 변화의 방향으로 필자는 (1) 중국과 그에 버금가는 큰 성장을 이루고 있는 인도가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협력관계를 맺을 가능성, (2) 두 나라를 포함하는 '아시아연합'의 형성 가능성, (3) 전 세계 차원에서 '수평적' 구조의 도입 가능성 등 세 가지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들 가능성은 서로 배타적인 것도 아니므로 두 가지 이상이 나란히 실현될 수도 있을 것이다. 

초국적 유통업체의 '갑질'이 끝난다 

제4장에서 설명하는 제조업과 유통업 사이의 관계 변화 전망도 함축하는 의미가 큰 것으로 보인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에 걸쳐 신자유주의 노선이 관철된 결과로 나타난 현상의 하나가 유통업체의 주도권 강화다. 초국적 대형 유통업체들이 시장의 주도권을 쥐고 여러 나라의 수많은 소규모 제조업자를 하청관계로 이끄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 되었다. 그런데 공급생산의 비중이 중국에 쏠리면서 구매자의 일방적 주도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조그만 여러 나라의 소규모 제조업자들은 업체 간의 경쟁에 겹쳐진 국가 간의 경쟁 때문에 연대가 불가능하다. 그런데 중국의 제조업자들은 하나의 국가에 속한다는 점에서 연대의 유리한 조건을 가진 위에 거대한 국내시장이 자라나고 있어서 초국적 유통업체에 대한 의존도가 덜하다. 그래서 구매자와 생산자의 갑을관계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가장 큰 무역상품의 하나인 의류 분야에서 이 변화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1975년 이래 30년간 시행된 다자간 섬유 협정(Multi-Fiber Arrangement)이 섬유 생산을 여러 나라로 분산시키고 있었는데 2005년 이 협정이 종료되면서 소수 공급국으로 생산 통합이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중국과 그 주변국들이 비중을 크게 키우고 있다. 이에 따라 구매자에 대한 종속성을 벗어나 협상력을 키우는 생산업체들이 속출하고 있고, 제조업계의 상대적 위상은 계속해서 상승할 것이 예상된다. 

생산업체 위상 상승의 예로 와이셔츠 제조업자인 홍콩의 TAL그룹의 경우가 흥미롭다. 큰 구매자 중 하나인 JC페니와의 관계에서 생산계획과 재고관리를 포함한 많은 기능을 넘겨받았다. "TAL은 JC페니의 북아메리카 매장에서 직접 판매 시점 자료를 수집하여 자체 고안한 컴퓨터 모델을 통해 제조 수량을 관리하고, 스타일, 색상, 크기에 따라 얼마나 많은 셔츠를 생산할지를 결정한다. 제조업체인 TAL이 소매업체인 JC페니의 창고와 의사 결정자들을 거치지 않고 JC페니의 각 매장에 직접 와이셔츠를 보낸다." (115쪽)

국가 차원이 아니라 현장의 업체 차원에서 시장조성자(market maker)의 역할이 이전되고 있는 것이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제조업은 하청업체의 입장으로 성장을 시작했다. 그런데 덩치가 커짐에 따라 하청업체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종속성을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하청업체의 입장을 벗어나는 추세도 이 위에 겹쳐져 종래의 갑을관계가 해소되고 있다. 


경제정책을 자유자재로 선택하는 국가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것은 중국의 경제정책을 개관한 제3장이다. 개혁-개방 초기의 중국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는 정책을 취했으나 2000년을 전후해서 국가 발전주의 정책으로 방향을 돌렸다는 관점이 이 장의 중심 내용이다. 

필자는 중국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2000년대 초까지 충실히 수행했다고 본다. 농민의 프롤레타리아화, 시장 확대, 중앙정부의 약화, 지역 격차 심화, 사유화-법인화 정책, 사회서비스의 상품화, 시장 자유화의 심화 등이 1980년대와 1990년대를 통해 진행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에 신자유주의를 벗어나는 정책 변화가 시작되어 2000년대 들어서는 국가 발전주의로 돌아섰다고 필자는 본다. 정부의 관리 능력과 재정 능력이 다시 강화되고 정부의 경제 개입이 심화된 점, 복지국가의 성격도 복원되기 시작하고 민족주의의 장벽이 강화된 점, 그리고 자본가 계급이 독자적인 권력을 구축할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 등을 꼽았다. 

그리고 필자는 2000년대 중국의 경제정책이 다른 동아시아(동남아시아 포함) 발전국가들과 유사한 점들을 열거한다. 강력한 국가 기구를 가진 점, 국가가 경제에 주도적으로 개입하는 점, 민족주의를 적극적으로 동원하는 점, 원활한 외국인 투자와 자본 축적을 위해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을 억압한 점, 산업화의 초기 국면에 자본 유입을 촉진한 점 등. 

그러면서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중요한 차이 세 가지를 지적한다. 첫째, 국가 자체가 기업가 정신을 내면화한다는 점. 둘째, 지방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유도하여 지방화된 상향식 전략을 구사한 점. 셋째, 평등주의에 비교적 많은 비중을 둔다는 점. 

개혁-개방 초기에 중국에게 신자유주의 정책은 성장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어느 단계에 이르러 신자유주의를 벗어난 사실은 필자가 정확하게 밝혔는데, 다음 단계를 '국가 발전주의'로 규정한 데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다른 발전국가들과의 유사점보다 차이점에 더 본질적 의미가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가 필요한 단계에서는 이를 취하고 국가 발전주의가 유용한 측면은 이를 취하지만, 정책의 기본 원리는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21세기 중국의 모습에서 가장 인상적인 측면은 '국가의 힘'이다. 단순히 강하다는 것뿐이 아니라 경제를 포함한 사회 운영에서 국가가 주도적 역할을 맡는다는 것이다. 이것을 필자는 "국가와 다른 계급들 간의 비대칭적인 권력 관계"라고 말하며, 이것이 수십 년간 "다양한 발전 정책을 자유자재로 추진할 수 있었"던 근거라고 한다. 정책을 '자유자재'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중국이 일반적 근대국가의 개념을 벗어난 점이라고 생각한다.

근대국가의 정책은 국내의 강한 세력에 의해 결정된다. 집권 세력이 바뀌지 않으면 정책 노선이 바뀌지 않고, 집권 세력이 바뀔 때는 정책의 변화 방향을 예측할 수 있다. 그런데 국가가 어떤 국내 세력과도 비대칭적 권력 관계를 가진다면 초월적 위치에서 정책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근대적 국가 원리보다 '천명(天命)' 사상을 떠올려주는 특징이다. 



'권위주의' 국가의 의미를 새로 생각한다 

아리기가 쓴 제2장을 옮긴이들은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의 축약본"과 같다고 했다. 원본을 머잖아 따로 다룰 것이므로 제2장 내용은 간략하게 넘어간다. 아리기는 중국의 발전에서 '전통의 회복' 측면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는데, 발전 초기의 자본 유치에 화교 자본이 선도적 역할을 맡은 사실도 그런 의미에서 중시한다.

1990년대 이후 향진(鄕鎭)기업이 맡은 역할을 그는 특히 주목한다. 농촌의 유휴 노동력을 산업에 대거 투입하는 과정을 순조롭게 했을 뿐 아니라, 노동집약적 기술 발전을 추구한 중국의 전통이 새로운 상황에서 가치를 되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전통이 중화인민공화국의 교육적 성취와 결합되어 "교육받은 값싼 노동력이 비싼 기계와 관리자를 대치하고 있는 도시 산업의 관행"을 이뤄낸 것이 대표적 사례의 하나다.

'엮은이의 결론'이라 할 수 있는 제10장에서 훙호펑은 중국의 지속적 발전에 대한 긍정적 전망과 부정적 전망 사이에서 균형을 취하려고 애쓴다. 우선, 지금까지 중국의 경이적 실적에 대한 경탄에서 나오는 섣부른 낙관론에 대한 반증을 제시한다. 

중국의 발전 모델에서 가장 큰 모순으로 훙호펑이 지적하는 것은 '과잉 투자'와 '과소 소비'다. 많은 제조업 분야에서 생산력 과잉 현상이 1990년대 중반부터 나타났으나 주요 국유 은행들로 구성된 금융계의 자원 재분배 기능이 원활하지 못하기 때문에 과잉 투자가 억제되기는커녕 계속 확대되어 왔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다른 동아시아 발전국가들이 사회주의 침투를 막기 위해 불평등 해소를 경제 발전과 함께 추진한 것과 달리 중국의 권위주의 국가는 불평등을 더욱 확대시켰기 때문에 국내 소비시장의 성장이 더디다고 한다.

이 두 가지 문제의 원인의 큰 부분이 중국의 특수한 국가 성격에 있다는 사실을 훙호펑도 파악하고 있다. (281쪽) 

중국의 기적을 가능케 한 첫 번째 정치 사회적 특징은 외곬으로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이고 경제 성장을 촉진한 지방의 발전 국가 혹은 조합주의 국가적 특성이다. 두 번째 특징은 노동자 계급의 요구와 시민 사회의 성장을 억압하는 권위주의적 당-국가의 지속성이다. 

이 책이 나온 지 6년이 지난 지금은 훙호펑이 지적한 '과잉 투자'와 '과소 소비'의 문제가 그리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훙호펑이 이 문제들에 지나치게 예민했던 것은 중국의 특수한 국가 성격을 충분히 감안하지 않은 이유 때문일 것 같다. 

중국 사회는 '불평등'을 견뎌내는 수준이 서방사회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나는 2002년 가을 베이징을 처음 방문했을 때 확연히 느꼈다. ("중국, 덩치 큰 나라에서 느끼는 힘" 2002-10-19)

중국에서 며칠 지내보며 절감한 것은 유럽의 크기와 중국의 덩치는 함께 비교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여러 나라를 합친 유럽의 크기라는 것은 산술적 합계일 뿐이다. 비슷한 크기의 영토와 인구지만 하나의 역사배경을 가지고 하나의 언어를 쓰며 하나의 정부에 통제받는 하나의 나라를 이룰 때 그 크기는 각 지방의 산술적 합계를 넘어서는 의미를 가진다. 

무엇보다 중국의 물가구조에서 이 특이한 덩치의 존재를 느낀다. 전체적으로 우리나라보다 엄청나게 싸다. 싼 물가수준은 싼 임금수준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런데 고급기술과 고급재료가 필요한 고급상품일수록 국제수준과 가격의 차이가 적다. 자동차는 우리나라보다 더 비싸다. 재래식 주거는 매우 싸지만 고급 아파트는 우리 수준과 큰 차이가 없다. (…) 

여기서 중국의 덩치를 어떤 식으로 느끼는가. 최저생활 개념에 가까우면서도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안정된 생활조건을 누리는 10억 안팎의 인구가 하나의 정부를 쳐다보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이 물가구조의 배경에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중국 정부는 임금과 물가의 국제수준과의 격차를 매우 천천히 줄여나가고 있고, 대다수 국민은 이 정책에 순응하고 있다. 그동안 중국의 많은 수출품이 국제시장에서 낮은 임금수준 덕분에 압도적인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 중국인의 '국가'에 대한 신뢰는 합리주의 원리로 운영되는 서방의 '근대국가'와 수준이 다르다.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으로는 '권위주의' 국가다. 그런데 그 '권위'는 집권세력이 억지로 만들어 일방적으로 행사하는, 우리에게 익숙한 '권위'가 아니라 인민에 대한 책임과 짝을 이루는 권위다. '천명(天命)'에 입각한 유교국가의 권위주의에 가까운 것이다. 

서양의 근대국가는 일체의 '권위'를 부정하는 분위기 속에서 '권력'에 의해서만 운영되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권력과 권위를 함께 운용하는 전통적 국가체제가 '국가'의 기본 기능 수행에 더 유리한 점이 있는지, 서양 근대사상의 타당성과 유효성이 널리 의심받는 이 시점에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공산중국이 유교국가의 특성을 많이 물려받았다는 시각도 중요한 참고가 된다. 

훙호펑이 "단기적, 중기적으로 볼 때 과잉 축적 경향과 환경 위기로 인해 중국에서 경기 둔화나 불황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지구적 자본주의의 무게 중심이 일반적으로 아시아, 특히 중국으로 이동하는 것은 계속될 것"(294쪽)으로 내다보는 근거 역시 국가의 역할에 있다.

다른 한편, 우리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중국이 이러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 믿을 근거가 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년간 축적해온 대량의 금융 자원을 제공한다면, 경제를 곤경에 빠뜨릴 수도 있는 소비 수요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대규모의 재정적 부양 정책과 사회 지출에 의지할 만한 충분한 자금 여유가 있다. (…) 이는 대공황으로 인해 미국의 진보 개혁가들이 재분배 및 규제 개혁과 뉴딜 정책의 도입에 대한 대기업의 저항을 분쇄할 수 있었던 것을 연상시킨다. (293쪽) 

지금까지 중국의 성취에서 국가의 역할이 컸다. 일반 국가에서 보기 힘든 강하고 큰 역할이었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중국의 진로에 국가의 역할이 큰 작용을 계속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이 책에 모아놓은 글 중에도 이 관점을 가리키는 내용이 많이 있는데, 엮은이가 충분히 부각시키지 못한 점이 아쉽다.

끝으로 번역에 대해 한마디. 여러 사람 글을 여러 사람이 옮긴 책으로는 번역에 안정감이 있다. 조율을 위한 노력이 많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안정감이 지나쳐 문제를 일으키는 점도 있다. 예컨대 'global'을 일률적으로 '지구적'으로 옮겼는데, 그보다 '세계' 또는 '국제'가 더 적합한 곳이 많다.

by 허난시 | 2015/03/16 15:01 | 중국연구실 | 트랙백 | 덧글(0)

왕차오화 - 중국 공산당과 그 성공 스토리 (NLR 2015 1/2) 요약

NLR 91 - 2015 1/2월호 
http://newleftreview.org/…/wang-chaohua-the-party-and-its-s…


왕차오화 - 중국 공산당과 그 성공스토리


- 이 글은 2010년 페리 앤더슨의 글 “두 혁명”(소련과 중국의 경로를 비교하고 논평하는 글)에 대한 답변이자 비판으로 쓰여진 것이지만, 중국의 혁명 이후(특히 개혁개방 이후의) 현대사를 다루는 독립적인 글로 봐도 무방하며, 왕차오화의 전체적인 논지(특히 덩샤오핑과 80년대에 대한 설명)는 전리군 선생의 해당 시기의 논지(모택동 시대와 포스트 모택동 시대)와 매우 유사한 논조를 띄고 있다.


- 페리 앤더슨은 중국 혁명의 유산인 3가지 특징(①열정적인 농민 ②자신의 혁명에 관해 자신감과 전략을 가진 국가적 리더쉽 ③민족문화와 바깥 세계를 향한 확신에 찬 태도)이 개혁개방 시기에도 발현된 것으로 판단하며 이것이 80년대와 그 이후 중국의 부상을 설명해줄 수 있는 것으로 본다. 하지만 왕차오화는 오히려 당이 개혁개방 시기 들어 그 세 가지 특징을 무시하고 심지어는 억압하였다고 보며, (특히 89 천안문 사건은 그 명시적인 사례) 그것이 현재 세계 경제 속에서 중국의 부상의 특수한 경로를 형성해온 것으로 파악한다.


1. 혁명에 대한 해부

- 생략 (주로 소련과 중국의 대외관계 등을 비교 설명)


2. 개혁으로의 길


- 왕차오화는 중국 개혁의 과정에서 문화대혁명이 끼친 영향을 더 주목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 그녀가 볼 때 문화대혁명 기간 GDP는 성장한 것으로 나오지만, 마오의 전쟁 준비에 따른 3선 건설 등으로 일반 인민들의 경제 상황은 상당히 피폐한 것으로 판단(특히 농업과 경공업 부문의 실제 생산능력이 많이 부족했음을 강조)


- 마오 사후, 당은 마오와 4인방을 분리시켜 문혁의 종결을 시도했으며, 당의 우선순위를 계급투쟁에서 현대화로 조정 (처음엔 마오의 계승자였던 화국봉과 당의 8대원로들이 함께 작업) 이후 덩샤오핑이 권력을 잡고 1981년 ‘역사결의’를 통해 문혁과 마오에 대한 평가를 하지만, 실제로 이는 국내의 현실정치의 산물이었지 실제로 마오와 마오 시기 당에 대한 비판적 반성은 이루어지지 않았음


- 실제 1976년부터의 과정을 보면 덩샤오핑과 그의 동료들은 자신들이 새로 잡은 권력을 강화하는 과정이었음, 1976-78년 중앙 정치무대로의 복귀, 1978-79년 자신들의 권위를 위협하는 실질적인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를 탄압, 1979년 베트남의 위협을 과장하여 애국적인 지지의 획득을 시도, 최종적으로 “團結一致向前看”이라는 구호로 집약(나중에 인민들은 向錢看으로 조롱)


3. 천안문 : 그 전과 후


- 덩샤오핑과 그 동료들(8대 원로)은 개혁 초기 순수한 사회주의 실현을 위한 민주적 정치개혁과 젊은이들의 참여 열망을 봉쇄했다. 그는 권력 복귀 이후 민주의 벽을 막았고 82년 헌법수정을 통해 대중들의 정치참여와 자기표현을 제한했다.


- 권력계승의 문제에서도 집단지도체제(법치 강조, 최고 지도부의 연령제한 등)를 강조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원로들의 권력 장악은 강고해졌다. 천안문 전후 후야오방과 자오즈양의 실각은 공식적인 회의체계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향후 20년간의 권력계승(장쩌민, 후진타오)도 이미 당시에 정해졌다.


- 경제 개혁은 ‘자유화’의 담론으로 진행되었는데, 한편으로 농촌과 도시에서 생산은 증가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비록 낮은 수준이라고 하더라도) 기존의 사회적 복지는 해체되었다. 정치 개혁의 담론은 경제적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 격하되었으며, 이는 ‘하나의 중심, 두 개의 기본점’이라는 구호로 집약되었다.


- 25년이나 지났지만 천안문 사건의 역사적 중요성은 여전히 완전히 파악되고 있지 못하다. 왕차오화는 천안문의 핵심적인 중요성은 덩샤오핑이 당의 권위에 대한 어떠한 도전, 특히 사회주의적 원칙의 범주를 벗어나서도 개혁 프로그램을 지속할 수 있게 되었다는 데 있다고 본다. 천안문에 대한 진압은 중국이 지구적 경제 체계에 통합될 수 있는 길을 닦았다는 것이다.


- 민중들의 봉기는 문혁 형식의 ‘동란’으로 여겨져, ‘안정’을 해치는 어떠한 행위도 용납되지 못했고, 사회주의적 민주와 참여정치의 슬로건은 가라앉았다. 정치적 시위를 진압하는 것은 경제성장을 가져다주기 위한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항상 새로운 경제정책이 도입될 때마다 그 이익이 무엇이던 간에 그 비용은 얼굴없는 수많은 대중들과 목소리낼 수 없는 생태환경이 감당해야 했다. (주택, 교육, 의료보장, 노동법, 주식시장 등등)


4. 경제 기적


- 페리 앤더슨은 덩샤오핑의 1992 남순강화를 중국이 기존의 사회주의적 지향에서 세계 자본주의의 주요 흐름으로 전환한 굉장히 중요한 분기점으로 보고 있지만, 덩샤오핑은 이미 1987년 이래로 ‘경제발전’을 당의 가장 중심적인 사업으로 강조해왔으며, ‘사회주의’는 이제 단순히 당이 모든 부분에서 권력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표지하는 슬로건에 불과해졌다. 덩샤오핑이 “안정은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슬로건을 전파할 수 있었던 것은 천안문 이후이다.


- 앤더슨은 자신의 글에서 지난 30년간 중국의 경제 개혁이 성공적인 스토리를 써왔다고 평가하지만, 거기서 그가 얼버무리고 있는 것은 1989년 이후이 어려운 시기이다. 장쩌민과 주룽지는 1989년 이후 도시와 산업개혁을 진행하기 위해 계속해서 공식적인 미디어를 통해 ‘철밥통’을 생산성의 장애물로 묘사해왔고, 실제 구조조정을 단행함으로써(1990년대 2,0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정리해고당함) 중국 노동자들은 개혁의 희생양이 되었다. 국유기업 역시 많은 관리자들이 사유화했다. (이러한 정책의 효과는 실질적으로 러시아의 ‘충격요법’과 별 차이가 없다) 2000년대 들어서 공적 자산의 금융화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부패가 발생했다.


- 농촌과 농민들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선 90년대 들어 정부의 세제 개혁(분세제)으로 인해 중앙 중심으로 재정이 돌아가고, 지방의 행정과 농업이 상품화와 시장 논리에 의해 돌아가게 되면서 기존의 개혁을 통한 이득은 사라지게 되었고 많은 향진기업들 역시 집체의 성격에서 실질적으로 개인기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또한 이런 상황으로 인해 많은 농민들이 도시로 이주해 ‘농민공’(2013년 2억 7천만명)이 되었고, 이들은 주거, 교육등 어떠한 사회보장 정책도 누리지 못한다. 자본과 국가는 힘을 합쳐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을 착취하고 있는데, 수억의 농민이 이런 규모와 속도로 극빈프롤레타리아가 된 경우는 세계사에서 처음이다.


- 종합적으로 왕차오화는 중국 공산당이 지속적으로 자신의 체제를 ‘사회주의’라고 칭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페리 앤더슨 역시 이러한 점에서 체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지만 왕차오화는 좀 더 철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꼬집는 듯...)


by 허난시 | 2015/03/03 22:06 | 중국연구실 | 트랙백 | 덧글(3)

중국의 꿈 실현될까? (미래에서 온 편지 2015년 1월호 기고글)

노동당 기관지인 [미래에서 온 편지] 2015년 신년호에 2014년 중국 회고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기고한 글을 블로그에 업데이트 해놓는다. (어쩌다보니 페북에 여기저기 메모해놓은 글들 모음이 되어버려 살짝 민망하기는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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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꿈 실현될까?

 

중국만큼 극단적인 평가와 전망들이 교차하는 나라도 없다. 세계적 차원에서는 미국의 헤게모니(워싱턴 컨센서스)를 대체하는 제 3세계의 대안 헤게모니의 모델(베이징 컨센서스)로 중국이 언급되다가도 곧 몰락을 앞두고서 마지막으로 발악하고 있는 일당 독재의 전제 국가로 묘사되기도 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는 침체된 세계 경제의 구원투수이자 무궁한 시장으로 평가되던 중국이 최근에는 경제의 경착륙으로 세계 경제의 장기침체를 야기할 주범으로 간주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곧 붕괴할 것처럼 예측되기도 한다.


중국을 통치하고 있는 중국 공산당에 대해서도 상반된 전망이 교차한다. 2014, 홍콩의 우산시위와 봄부터 내내 이어진 노동자들의 파업물결, 그리고 (비록 시진핑 체제 등장 이후 부정부패에 대한 강력한 사정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드러나는 중국의 고질적인 문제인 권력과 자본의 부정부패를 바라보고 있으면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당이 바로 중국 공산당이다. 한때 한국의 적지 않은 이들이 대장정연안 사회주의에서 중국 공산당의 인민에 대한 헌신과 대중노선을 보며 사회의 변혁을 꿈꾸던 적도 있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중국 공산당과 시진핑에 대한 중국 인민들의 지지도는 여전히 높고 확고하다.


이런 모순적인 전망 속에서 한국 사람들은 한편으로 중국의 계속되는 경제발전을 부러워하고 중국에 대한 경제적 종속을 두려워하면서도, 우리가 IMF 위기를 겪었던 것처럼 중국도 일정 발전단계에서 경제위기가 터질 것이라는 중국붕괴론을 선호한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날까? 막상 중국에 경제적/정치적 위기가 닥치면 가장 힘들어지고 큰 피해를 입을 곳은 바로 한국이 아닐까? 이 글에서는 중국의 2014년을 회고하며 위와 같은 쟁점들에 대한 평가와 전망을 시도해보려 한다.


- 호랑이와 파리를 때려잡아라

 

2014년 일명 호랑이와 파리 때려잡기(打虎拍蝇)”로 불리는 중국식 부패와의 전쟁이 강도가 더 높아졌다. 호랑이는 권력의 상층부인 고위직을 의미하고 파리는 하위직 부패사범을 비유한 표현이다. 중국 공산당은 개혁개방 이후 시장화와 경제성장 과정에서 특권을 가진 간부들의 만연한 부패로 통치정당성에 큰 위협을 받고 있다. 실제로 1989년 천안문 사건 당시에 대중들은 민주만큼이나 부정부패 척결을 가장 큰 요구사항으로 내걸었었다. 그간 몇몇 고위직들의 부정부패 사건들이 터져 나오기는 했지만 보통 각 파벌들이나 권력엘리트들 간의 권력투쟁에 불과했다. 그러나 2012년 시진핑 체제가 들어선 이후로 부패운동의 강도와 범위는 유례없이 강력했다. 그 절정은 지난 후진타오 체제에서 권력의 심장부였던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중 한 명이자 공안 및 사법을 총괄했던 정법위원회 서기를 맡았던 저우용캉(周永康)에 대한 처리였다.


이미 작년부터 캉스푸(康師傅: 중화권의 대표적인 라면 및 스낵업체로 중국 네티즌들이 검열을 피해 온라인에서 저우용캉을 일러 부르는 별명)가 내사를 받고 있다는 것은 루머를 넘어 공공연한 사실이었지만, 전직 상무위원이 부정부패로 처벌받지 않는다는 기존의 관례를 깨뜨리는 초유의 사건이었기 때문에 그 사법처리가 공식화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2014729일 인민일보 등을 비롯한 각종 언론 매체에 그의 부정부패에 대한 내용이 전면공개되기 시작했고 부정부패 척결과 당기율 위반에 대한 엄중한 처리가 예고되었다. 대대적인 캠페인에 이어 126일 자정을 기해 저우용캉에 대한 당적박탈 및 출당조치가 이루어졌으며, 검찰로 사건이 이첩되었고, 뇌물수수와 간통, 성상납, 국가기밀 유출 등의 죄목도 모두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다. 저우용캉 뿐만 아니라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을 지낸 군의 실세 쉬차이허우도 자택 지하실에 현금을 무려 1톤이나 가지고 있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와 함께 부정부패 혐의로 체포되었다. 권력 최상층부였던 이들을 비롯해 수많은 호랑이와 파리들이 잡혀들어갔다. 이러한 강력한 반부패운동을 통해 중국 공산당은 각종 산업부문에 자리잡은 기득권들을 타파하기위한 개혁을 시도했으며, 또 한편으로는 대중들에게 큰 환심을 사게 되었다. 시진핑과 당 기율검사위원회 서기인 왕치산(王岐山)이 이끌고 있는 반부패운동이 여기서 멈출지 아니면 저우용캉보다 더 큰 호랑이(중국 내외에서 장쩌민이 다음 타겟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를 노리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 너는 내가 주는 것만 가질 수 있다

 

현재 중국 인민들이 위와 같은 반부패운동을 바라보는 태도는 한 마디로 "只反貪官, 不反皇帝" (부패한 지방관료들에 반대하지 당 중앙에는 반대하지 않는다)라고 할 수 있다. 즉 강력한 당 중앙이 아니고서야 누가 전횡을 부리는 지방과 관료들을 견제하겠는가라는 심리가 작동하고 있다. 게다가 이러한 반부패운동의 흐름과 더불어 시진핑이 보여주고 있는 친근한 대중노선은 더욱더 많은 인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경제발전에 따라 중산층이 생겨나고 이 중산층이 체제의 민주화를 요구할 것이라는 보편적인 예측과는 달리 오히려 중국에서는 중산층이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이끌어내는 중국 공산당의 능력을 인정하고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몇몇 서구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중국 공산당의 업적 정당성(performance legitimacy)’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특히 개혁개방 이후 중국 공산당의 가장 큰 목표는 경제성장이었으며, 이는 사회주의, 자본주의도 아닌 ‘GDP주의라고 표현될 정도였다.


하지만 권력도 부도 가난도 세습된다(官二代, 富二代, 窮二代)”는 말이 인민들 사이에서 회자될 정도로 개혁개방이 가져다줬던 기회의 문이 슬슬 닫혀가는 중이고 아직은 당의 통치에 대한 정당성을 인정은 하지만 이런 문제들이 고착화되었을 때 불만이 터져나올 수 있는 약한 고리는 노동자와 농민으로 보인다. 그들은 지방 관료나 해당 기업에는 격렬하게 심지어 폭력적으로 저항하지만 중앙 정부에 대해서는 항의보다는 청원(petition)을 한다. 물론 중국에 다당제를 비롯한 서구식 민주주의를 도입하려는 운동이나 시민사회의 역량 강화와 보편적 인권의 확립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활동하는 이들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현재 옥중에 있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류샤오보(劉曉波)를 비롯해 공직자 재산공개 운동과 1989 천안문 재평가 등을 요구했던 변호사이자 인권활동가인 쉬즈융(許志永)과 푸즈창(浦志强) 등이 있었다. 쉬즈융과 푸즈창은 2014년 둘 다 공공질서 교란죄로 체포되어 실형을 선고받았다. 중국 공산당은 한편에서 대중노선과 일부 친민정책을 실시하여 대중들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한편에서 자유주의적 활동가들에게는 여지를 두지 않고 바로 탄압하고 있다. 이런 당의 모습은 장이모우 감독의 영화 [황후화]에서 황제로 분했던 주윤발이 반란을 일으켰던 둘째 아들인 주걸륜을 진압하고 건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너는 내가 주는 것만 가질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은 안정적인 통치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대중노선과 강압적 통치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소설가 위화(余華)의 표현에 따르면, "마오쩌둥 시기 중국엔 계급이 없었지만 지도자들은 '계급투쟁을 잊지 말자'고 강조했었고 심지어 베개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이 구호를 써놓아 꿈에서도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정작 개혁개방 이후 계급과 빈부격차가 다시 생겨나고 모순이 심화되자 이 구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조화사회''안정우선'으로 대체되었다"

   

- 닭 방귀 뀌시네

 

그렇다면 중국 정치와 경제는 계속해서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 개혁개방 이후 서구의 소비수요에 대한 과잉의존과 수출주도형, 민간소비 억제형의 불균형적인 중국의 발전모델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및 유럽의 소비시장이 크게 위축되면서 커다란 위험에 직면해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중국의 성장세가 지속되고 있는 것은 200811월에 중국정부가 실시한 4조 위안(5700억 달러)에 달하는 경기부양책이 주된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경기부양책의 내용은 대부분 고정자산투자로 이루어져 있어서 중국 경제의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심화시켰다. 특히 이러한 과도한 유동성 공급으로 인해 주요 도시지역의 부동산 거품이 심각해졌으며, 생산영역에서의 과잉투자 문제도 해결되지 못하여 생산기업의 부채는 증가했고 수익성은 하락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시진핑과 리커창은 집권 이후 꾸준히 중국 경제의 구조개혁 등을 강조해왔으며, 수출주도에서 내수확대로의 정책전환을 시도해왔다. 나름대로 최저임금을 꾸준히 올렸고 2010년 폭스콘에서의 노동자 연쇄자살, 2010년 혼다 파업 등을 겪으며 사회안정을 위해 당-국가 주도 하에 단체교섭들을 이끌어내려고 했다. 즉 한편으로는 일정 정도의 당근을 통해 파업 등의 사회 불안정을 없애고 내수 확대를 통해 경제 위기를 벗어나보려는 정책적 시도가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의지에도 불구하고 정책 전환이 부드럽게 잘 이루어지지는 않고 있다. 2014년 들어서자마자 1949년 신중국 건국 이후 단일 사업장의 파업으로는 최다인원(48천명)이 참여했다고 알려진 광둥성 위위안(裕元 : 나이키, 아디다스, 컨버스 등의 하청업체) 파업이 벌어졌고, 뒤이어 광동지역의 여러 생산업체에서 연쇄 파업이 이어졌으며, 다른 지역에서도 월마트 노동자 등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과 교사들이 처우개선 등을 요구하며 파업의 물결이 일어났다. 현재 중국에서는 신세대 농민공을 중심으로 계급의식이 새로이 형성되고 있으며, 권리의식 또한 성장하는 중이다.


한 예로 중국의 노동계급은 당-국가의 발전주의적인 GDP 담론을 자신의 언어로 풍자한다. 민간에서 GDP雞的屁’(중국어 발음으로 GDP와 동일한데, 닭 방귀라는 뜻이 된다. 중국어에서 放屁’(방귀 뀌시네)는 헛소리한다는 뜻이다)로 표기한다던가 官員熱衷GDP, 百姓討厭雞的屁” (관료들은 GDP에 열중하지만, 인민들은 닭 방귀를 혐오한다네) 같은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이렇게 중국의 GDP주의로 집약되는 신자유주의적 발전주의 담론이 일정하게 사회적 저항에 직면하자 중국 당국 역시 여기에 맞춰 일정한 변형을 추구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 GDP주의를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되 계속해서 '포용적 성장', '내수중심의 발전으로의 전환', '민생개선', '구조개혁' 등의 담론을 꺼내놓고 있다. 이런 것들이 수사적 차원의 담론에 그칠 것인지 아니면 어떤 실질적인 결과물들을 만들어내면서 연착륙할 것인지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만약 실질적인 결과물들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더 격렬한 저항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동상이몽이 아닌 같이 꾸는 중국몽은 가능한가?

 

시진핑은 2013년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중국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것이 중국 인민의 꿈이라고 하는 중국몽이라는 슬로건을 들고 나왔다. 중국몽은 아직은 세부적인 내용이 비어있는 구호이자 목표지만 그것이 점차 비어가고 있는 사회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공백을 민족주의적인 슬로건으로 메우려고 하는 것은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올해 만들어진 [Chinese Dreamers]라는 짧은 다큐멘터리에서 중국의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지금 느끼고 있는 것을 나직하지만 단호하게 고백한다. 농촌에서 올라온 젊은 농민공들은 "적응하지 못하면 배척당한다. 도시의 삶은 전쟁과도 같다", “나는 이 도시에 와서 타락했다. 처음에 이 도시에 왔을 때 난 거지들을 만나면 돈을 주었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이 콘크리트 정글은 내 심장을 강철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난 계속해서 타락하고 있다. 이 중압감이 어디서 오는지 모르겠다. 때때로 난 정말 울고 싶다."고 도시에서의 소외된 삶들을 증언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노동에 대하여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농민공이 없었으면 중국이 이렇게 빨리 발전할 수 없었다. 힘들고 더러운 일을 하는 것은 농민공들인데 대중들은 그것을 보지 않는다. 그들이 살고 있는 집도, 먹는 음식도, 입고 있는 옷도 다 농민공들이 만들어낸 것인데도 말이다." 그들은 세계 최대의 빈부격차라는 문제를 지닌 사회주의국가 중국이 더 평등하고 자유로워지길 바란다. 중국 젊은이들의 삶과 꿈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 중국몽은 각자도생의 '동상이몽'이 아니라 평범한 이들, 그리고 우리가 같이 꾸는 꿈이어야 한다.

by 허난시 | 2015/01/22 00:15 | 중국연구실 | 트랙백 | 덧글(0)

상하이 모델? - 조엘 안드레아스 (번역 일부)

[뉴레프트리뷰] 한국어판 4호에 실렸던 번역글 조엘 안드레아스(Joel Andreas)의 <상하이 모델? > (황야셩의 [중국 특색의 자본주의]에 대한 장문의 비판 서평)의 서론과 결론 부분을 옮겨봅니다. 원문은 New Left Review 2010년 9/10월호에 실렸었습니다. 
http://newleftreview.org/II/65/joel-andreas-a-shanghai-model

또 이 서평에 황야셩이 직접 답변글을 싣기도 했습니다. 

http://newleftreview.org/II/65/yasheng-huang-the-politics-of-china-s-p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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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모델? 
- 황야셩의 『중국특색의 자본주의』

조엘 안드레아스 (Joel Andreas)

개인기업을 억압하는 정부에 가장 분노하면서도 빈곤층을 대변하여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자유시장 옹호자들이 있다.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남반구의 성장하는 도시들에서 간신히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는 농민과 농촌 출신 이주자들의 빈곤은 가난한 사람들의 기업가적 에너지를 억누르면서 정실자본가들과 다른 엘리트 계층에 특권을 제공하는 정부 관료들 때문이다. 빈곤층들의 빈약한 재산에 대한 소유권을 명확히 규정하고, 빈곤층에 신용 획득의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과도한 세금과 규제를 없애준다면, 이들은 자신들의 빈곤에 대한 기업가적 해법을 찾아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 발전의 강력한 엔진이 될 것이다.

이것이 사람들에게 폭넓게 인정받고 있는 황야셩(黃亞生)의 책 『중국특색의 자본주의』의 요지이다. 중국이 지난 30년간 서구의 자본주의적 관행을 향해 꾸준히 전진해왔다고 찬사를 보내온 다수의 주류 경제학자들과 달리, 황야셩은 중국이 1990년대에 진정한 경제적 자유화에서 후퇴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책에서 중국이 1980년대에는 소규모 농촌 기업가들이 주도적 역할을 하는 일종의 기업가적 자본주의를 발전시켜왔지만, 1990년대에는 정부와 관계있는 도시지역의 거대기업에 유리한 국가주도 자본주의를 지향해왔다고 주장한다. 중국 안팎의 학계와 정책 결정 집단들 사이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아왔을 뿐만 아니라 『이코노미스트』의 2008년 ‘올해의 책’ 가운데 한 권으로 선정되기도 한 황야셩의 책은 자유 시장 독트린과 인민주의적 주장을 결합하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중국에서 더 많은 경제적 자유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대부분 소득 불평등의 증가와 경제적 위계에서 하위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의 불평등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황야셩은 자유 시장을 열광적으로 주장하는 이들 가운데서는 좀 특이하게도 노동자와 농민들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분석의 중심에 놓는 소규모 집단에 속한다. (물론 학자들과 언론인들이 종종 중국의 노동자와 농민들이 처한 어려움이 정부가 충분히 시장개혁을 수행하지 못한 결과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상당히 일반적인 일이다. 하지만 황야셩처럼 이 주제를 정교한 학술적 분석의 중심에 두는 학자를 보기는 쉽지 않다.) 
이 집단에 속한 사람들에는 허칭리엔(何淸漣), 친후이(秦暉), 케이트 저우(周曉, Kate Zhou)와 같은 저명한 학자들과 언론인들이 있으며, 이들은 중국의 불평등 증가가 관료의 부패, 국가 소유의 지속, 과도한 국가 통제, 사기업에 대한 제약, 국가 지도자들의 도시 편향, 투명성 부족, 정실 자본주의 등의 요소 때문이라고 상세히 논증해왔다.

이 가운데서도 황야셩의 분석은 여러 가지 이유로 특별한 주목을 받아왔다. 우선 그는 중국과 미국 양쪽에서 모두 최고의 학술기관에 몸담아왔다. 황야셩은 중국 본토 출신임에도 하버드 대학 행정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MIT 대학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중국에서 가장 저명하고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들이 다수 자리잡고 있는 칭화대학(清華大學)의 중국경제 연구센터(中國經濟硏究中心)와 중국과 세계경제 연구센터(中國與世界經濟硏究中心)에도 연구원으로 있다. 둘째로 황야셩은 중국에서 시장 개혁이 꾸준히 이루어져 왔다는 표준적인 설명에 대해 중국에서 농촌기업이 현저히 쇠퇴하게 된 것은 사기업 활동에 대한 국가의 억압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반박해왔으며, 일견 도발적이고 직관적으로 보이는 이 주장을 세밀히 다듬어왔다. 셋째, 황야셩은 중국 토착 기업들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해외 투자 기업에 유리한 중국의 정책을 비판했다. 넷째, 황야셩은 인상적이고 독창적인 연구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그는 중국의 은행들과 농촌 신용협동조합들의 수천 쪽에 달하는 1차 자료와 기존 학자들은 거의 참고하지 않았던 농촌기업에 대한 공식조사 자료들을 철저하게 검토하여 획기적인 방식으로 분석을 진행할 수 있는 다양한 통계자료를 생산해냈다. 이 자료들로 인해 추후 연구자들은 큰 도움을 받게 되었다.

『중국특색의 자본주의』는 황야셩이 ‘농촌 기업가들의 10년’이라고 규정하는 1980년대와 ‘국가가 주도한 도시의 10년’이라고 명명한 1990년대 간의 비교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에 따르면, 1980년대에 중국의 경제정책은 주로 자오쯔양(趙紫陽), 완리(萬里) 등 자유주의적인 실험을 시도하는 경향이 있고 농촌 기업가들에게 호의적이었던 지도자들의 손에 놓여 있었다. 이들은 농촌에서 인민공사(人民公社)를 해체한 후, 정부의 통제를 풀어주고 신용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주어 사기업들이 번성할 수 있도록 했다. 도시에서는 여전히 침체된 정부계획과 국유기업이 지배적이었던 반면, 줄곧 도시보다 국가의 영향력이 약했고 기업가 정신이 강했던 농촌에서는 소규모 노동집약적 기업들이 급속한 경제 팽창의 주된 엔진이 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의 자유화 흐름은 1989년 톈안먼 사건의 진압과 자오쯔양의 실각으로 갑작스레 중단되었다. 경제정책 결정권은 국가가 지도하는 산업계획을 선호하는 상하이 출신 도시 지향적인 기술관료 장쩌민(江澤民)과 주룽지(朱鎔基)가 이끄는 새로운 지도부가 차지했다. 이들은 농촌기업가들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대신 이들은 자본 집약적, 에너지 집약적인 대형 첨단기술 프로젝트를 선호했으며, 국유기업에 집중적으로 자금을 쏟아부었고, 세금감면으로 외국인 투자를 장려했다. 그 결과로 점차 부패하는 정실자본주의가 등장했으며, 압류한 농지 위에 번쩍이는 고층빌딩이 들어서는 등 도시 지역의 호황이 시작되었다. 신용 부족에 시달리게 된 농촌기업들은 활기를 잃고 쇠퇴하게 되었다.

황야셩은 상하이를 국가 주도의 도시 모델이 잘못된 전형적인 사례로 보고 책의 한 장(章)을 할애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상하이의 국내총생산(GDP)은 급속히 성장했지만, 도시의 경제발전은 토착 사기업들보다 정부기관이나 외국 회사가 다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기업들이 주도했다. 국가와 관계된 기업들의 수익성을 보장하기 위해서 국유 부문 노동자들이 특히 공격적으로 정리해고되었으며, 사영(私營) 부문의 경쟁을 통한 발전은 억압되었다. 그 결과 상하이에는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상대적으로 적었고 중대형 사기업들도 부족했다. 황야셩이 볼 때, 이렇게 한쪽으로 편향된 정책으로 소득양극화가 발생했으며, 도시의 빈곤층들은 실질 소득 하락을 겪게 되었다.

황야셩은 점증하는 부패, 반복되는 자산 거품, 총요소생산성(TFP) 성장의 둔화를 근거로 중국의 국가 주도 발전모델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표한다. 그는 책의 마지막 장에서 중국 모델이 다른 동아시아 국가나 인도가 추구해온 모델에 비해 떨어진다고 평가한다. 황야셩이 보기에 동아시아 국가들과 인도도 현재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데, 이는 이 나라들이 (1980년대에 중국이 그러했듯이) 경제계획 대신 토착 사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자유주의적 정책 환경을 조성했기 때문이다. 중국에 이웃한 동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일본, 대만, 한국이 모두 과거에 산업 정책적 접근을 추구했지만, 국가가 경제발전 감독에서 가장 많이 개입했을 때조차 항상 사적 부문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더욱이 인도와 마찬가지로 이 나라들은 외국인 투자에 의존하지도 않았다. 황야셩은 이 모든 나라들의 경제성장이 토착 기업가들이 핵심적 역할을 한 사적 부문의 성공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황야셩의 주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발전이 아니라 불평등과 관련한 부분이다. 그는 1980년대와 1990년대를 통틀어 중국 경제는 급속히 성장했지만, 국가 주도의 도시 모델 시기보다는 농촌 기업가 모델 시기에 소득분배가 훨씬 더 공정했다고 주장한다. 1980년대에 개인 소득은 GDP보다 더 빠른 속도로 증가했고, 농촌 소득도 도시 소득보다 더 빨리 증가했다. 1990년대에 이 두 경향은 모두 역전되었으며, 교육과 의료보장도 점차 농촌 주민들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고, 이는 농촌의 문해율과 보건 지표의 저하로 이어졌다. 중국 정부가 현명하게 뒤로 물러서서 사기업들이 융성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경제가 급속히 성장할 뿐만 아니라 그 성장의 결과도 훨씬 공정하리라는 것이 이 책의 핵심적인 주장이다. 이 글에서 나는 이러한 주장들의 기저에 깔려있는 주요 경험적 쟁점을 검토할 것이다. 첫째, 중국에서 농촌 기업들이 1980년대에는 융성했지만 1990년대에는 쇠퇴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둘째, 1990년대에 경제적 불평등이 그렇게 급속히 증가한 원인은 무엇인가?

(중략)


중국의 농촌은 수억 인민들의 고향이며, 여전히 농민들의 생계유지를 위한 생산과 소규모 기업들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1990년대의 자본주의적 전환으로 대규모 자본주의적 기업들이 공업, 운송업, 상업, 심지어는 농업에 이르기까지 농민들이 의존해오던 기업 활동 분야를 서서히 잠식해 들어오게 되자 농민들과 소형 농촌기업들은 거대한 압력을 받게 되었다. 현재 점점 더 많은 농촌 가구들이 적어도 어느 정도는 임노동으로 받는 소득에 의존하게 되었으며, 많은 농민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멀리 떨어진 지방으로 이주하고 있다. 공식 추계치에 따르면, 현재 농민공들은 1억 3천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2002년 중국공산당 16차 당대회에서 권력을 잡게 된 후진타오(胡錦濤)와 원자바오(溫家寶) 정부는 급진적인 시장 개혁으로 발생한 사회적 혼란과 대중 저항을 염려하여 중국 농촌의 사회적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여러 조치를 취해왔다. 무엇보다도 농업세가 폐지되었고, 곡물보조금을 인상했으며, 농촌 기반 시설에 대한 국가 투자도 확대되었고, 정부의 보건과 교육 지출도 증가했다. 게다가 2008년 제정된 노동계약법은 농민공들의 임금과 복리 후생 개선 요구를 담고 있었으며, 대기업들이 10년 넘게 일해온 노동자들에게 종신고용을 제공하도록 했다. 다른 한편 정부는 대규모 기업식 농업의 발전을 촉진시키려는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토지 임대 제한 조치들을 완화했다. 이 정책들은 모두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그 정책의 실행을 놓고 오랜 기간 논쟁이 지속되었다. 고용주들은 노동법 시행을 지연시켰으며, 특히 수출지향적인 제조업체들은 새로운 노동계약법으로 세계시장에서 자신들의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며 소리높여 불만을 표시했다. 농민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농지의 장기 임대를 반대했으며, 농지 장기 임대가 수많은 토지 없는 농민들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논란의 쟁점들의 중심에 있는 문제는 ‘국가가 자본으로부터 노동자들과 소규모 기업가들을 보호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러한 보호조치들을 철폐하여 대기업들의 이익을 증진시켜야 하는가?’다. 여기에서는 황야셩이 이 문제에서 어느 입장에 서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황야셩은 자칭 대기업이든 소기업이든 상관없이 중국의 모든 토착 사기업을 옹호한다. 하지만 앞에서 지적했듯이 그는 소규모 가족기업과 대규모 자본주의적 기업을 개념적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한편으로 소규모 농촌 기업가들은 이 책의 주인공이다. 황야셩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가난하고 허약한 기업에 초점을 두고 중국에서 국가가 가장 무시하고 가장 덜 통제하던 빈곤 지역과 빈곤 계층에서 기업 활동이 특히 활발했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으로 황야셩은 수십억 위안의 가치를 지닌 기업을 세운 부유한 개인 기업가들을 자신의 영웅에 포함한다. 그가 소규모 농촌 기업가들의 기업가 정신을 찬양하고 그것이 쇠퇴하게 된 것을 한탄하는 데 책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중국이 ‘사적 부문 기업들의 확장과 협력 발전을 방해하는 기업에 적대적인 환경’을 없애서 보다 능력있고 정교하며 기술적으로 진보하여 경쟁력을 갖춘 자본주의적 부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궁극적으로 그의 처방은 결국에는 중국의 사기업 부문을 발전시키기 위한 일관된 계획이다.

황야셩은 전반적으로 ‘정부 개입 축소’와 경제 정책에서의 ‘자유화의 심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그의 주된 실제 관심사는 국가 부문의 규모를 더 줄이고 국유기업이 누리고 있는 남은 특권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는 또한 교역과 투자에서 단일한 전국 시장을 만드는 데 남아 있는 장애물들을 제거하여 중국 기업들을 외국 기업들과 성공적으로 경쟁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황야셩이 시장 근본주의자는 아니다. 실제로 그는 이전부터 외국 자본으로부터 토착 기업들을 보호해왔던 일부 시장 규제는 찬성하고 있다. 그는 중국의 WTO 가입을 지지하지도 않았으며, 특히 외국인 투자와 관련하여 중국 시장을 보호하는 것이 유용하다고 봤다. 그는 외국인 직접투자를 장려하겠다는 중국 공산당의 결정에 비판적이며, 그의 책에서는 중국의 자본 시장 개방과 위안화 자유태환 허용과 같은 익숙한 서구의 요구를 찾아볼 수 없다. (황야셩은 전작에서 이 주제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Selling China: Foreign Direct Investment during the Reform Era, Cambridge 2003.) 황야셩이 찬성하는 일부 국내 자본 보호 정책은 대기업과 소기업을 막론하고 다양한 중국 기업들에 확실히 유리한 것들이다.

황야셩은 외국 자본으로부터 모든 중국 기업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여기지만, 국내 자본으로부터 작은 기업들을 보호하기 위한 시장 규제는 별로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사기업이 7명 이상을 고용하지 못하도록 한 금지규정이 철폐된 것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1980년대에 이 규제조치로 많은 분야에서 소규모 가족 기업들이 활동할 수 있었는데, 만약 이 금지규정이 없었다면 이 분야들은 대기업들이 차지했을 것이다. 또한 그는 정부가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보호하거나 노동 조건에 간섭할 필요가 없다고 믿고 있으며, 특히 2007년의 노동계약법도 비판했다. (불행히도 중국의 노동관련 법률들이 대부분 시행되지 못했는데) 만약 그 법이 시행되었다면, 급증하고 있던 농민공들을 포함하여 임노동자들의 협상력이 커졌을 것이고, (소기업들이 이 법의 요건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에) 소기업들의 경쟁력도 강화되어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대기업과 맞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황야셩은 이 법이 ‘경제에 큰 피해를 끼칠 것’이라고 염려했다. 그는 책에서 이 법으로 인해 노동 시장이 경직되어 ‘창업을 하려는 기업가들의 동기를 떨어뜨릴 것이며, 국내 기업들이 베트남이나 인도 같은 나라로 떠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오늘날, 농촌 가족경제의 장기 생존력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것은 농지 집중과 대규모 농업 기업을 발전시키려는 노력이다. 1978년에 농촌 공동체가 해체된 이후, 토지는 마을의 소유로 남아 있었으며, 마을의 가구들에 동등하게 분배되었고, 토지 집중을 막고 토지 없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토지의 판매 및 임대는 엄격히 통제되었다. 비록 여러 해에 걸쳐 이러한 제한조치들이 완화되었지만, 소농경제의 핵심적인 토대인 농촌 가구의 토지 사용권은 계속해서 보호되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자유시장 옹호자들은 농지 사유화를 밀어붙여왔다. 이들은 자신들이 농민들의 권리, 즉 명확히 정의된 개인소유권을 옹호하며, 농민들의 소득 증진에 관심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한편으로는 노골적으로 사유화가 농지 집중을 위해 필요하며 더 규모가 크고 효율적인 농업 기업을 발전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국가는 실험적으로 농업 기업의 농지임대를 허가해주었으며, 아마도 개인의 토지 장기 사용권 양도를 허용할 지도 모르는데, 이는 사실상 사유화의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개인으로의 농지 집중을 찬성하는 쪽과 농지 집중으로 농민들이 생존수단을 상실하여 사회 불안정을 낳을 것이라고 경고하는 쪽으로 양분되어 있다. 이 문제에 대한 황야셩의 입장은 무엇인가? 그가 비록 농민들의 토지를 도시 개발 프로젝트에 이용하는 부패한 관료들을 비난하기는 하지만, 이 책에서는 사유화와 농지 집중의 문제를 피해간다. 하지만 그는 다른 글에서 농업 기업을 발전시키기를 원하는 이들의 구호인 ‘농민들에게 전면적인 토지 사용권 거래를 승인해줄 것’을 주장했다. (Huang, ‘China’s rise relied on a rural miracle. So does its future’, Guardian blog, 17 May 2009. 또한 黃亞生, ‘農村改革的未竟之業’, FT 中文網, 2009年 8月 18日 참조)

중국의 토착 자본 부문의 확장에 우호적인 조건을 창출하려는 황야셩의 계획은 자급농업, 소기업, 임노동에 모두 매달려 살아가는 대다수 농민들에게는 어떤 위안도 가져다주지 못할 것이다. 자본주의적 기업의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서 황야셩은 임금을 낮게 유지하고 고용 유연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는 외지로 일하러 나간 구성원들의 소득에 의존하고 있는 농촌 가족들을 계속해서 압박할 것이다. 더욱이 자본주의적 부문은 소규모 기업들을 희생시켜 확장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계획은 더 많은 농촌의 가족 기업들을 파산으로 몰아갈 것이다. 이는 중국 농촌의 빈민들을 구원해줄 처방이라 보기는 힘들다.

황야셩의 책은 오늘날 중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 즉 부유하고 부패한 관료들이 열심히 일하는 대중들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것을 정교한 통계적 분석으로 확증했기 때문에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이해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다. 부패는 만연했고, 당과 국가 관료들은 대부분의 인민들이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동안 자기 주머니를 채우고 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이 관료들이 점점 더 강력한 자본주의적 기업들이 노동자들과 자기보다 규모가 작은 경쟁자들을 짓밟도록 놔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기업들을 위해 규제를 완화하자는 황야셩의 권고는 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by 허난시 | 2014/12/11 04:20 | 중국연구실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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